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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근육은 젖산을 만들까?; 무산소 운동과 대사적 대가생리활성 및 영양학 2025. 7. 27. 12:33
사람이 전력질주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반복해서 들면 어느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근육에 ‘불타는’ 듯한 느낌이 찾아온다. 익숙한 표현으로 “젖산이 쌓였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왜 근육은 고강도 운동 중에 젖산을 만들며, 그것은 반드시 피로와 통증을 유발하는 원흉일까?
우리가 호흡으로 산소를 들이마시며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격렬한 운동을 하다 보면 산소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때 근육은 놀라운 대사적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산소 없이도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젖산 경로'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젖산이 생성되는 생화학적 이유, 젖산의 실제 역할과 오해, 무산소 대사의 한계와 장점까지 살펴보며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근육의 ‘비상 대응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풀어본다.
1. 에너지 대사의 기본: ATP가 핵심
모든 근육 수축은 ATP(아데노신 삼인산)의 분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ATP는 세포 내에서 ‘직접 사용 가능한 에너지 통화’로 작용하며, 수초 이내로 고갈된다. 따라서 지속적인 ATP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ATP 재생은 다음 세 가지 경로로 이뤄진다:
- 크레아틴 인산 경로 (ATP-PC 시스템)
- 빠르게 ATP 생성
- 약 10초 지속
- 무산소 해당과정 (Anaerobic Glycolysis)
- 포도당 → 젖산
- 빠르지만 효율 낮음
- 산화적 인산화 (Aerobic respiration)
- 산소 필요, 느리지만 지속 가능
- 지방과 포도당 모두 사용 가능
고강도 운동 중에는 산소 공급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근육은 두 번째 경로, 즉 무산소 해당과정을 통해 ATP를 빠르게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젖산’이라는 부산물이 생성된다.
2. 무산소 해당과정에서 젖산은 왜 생길까?
2-1. 해당과정의 핵심 흐름
해당과정(glycolysis)은 세포질 내에서 일어나며, 포도당 1 분자가 2 분자의 피루브산(pyruvate)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이때 ATP와 NADH가 생성된다.
하지만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피루브산이 미토콘드리아로 이동하여 산화적 대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NADH를 산화시키기 위한 우회로로 젖산 생성 경로가 가동된다.
2-2. 젖산의 생성과 NAD⁺ 재생
- NAD⁺는 해당과정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조효소다.
- 피루브산 + NADH → 젖산 + NAD⁺ (효소: LDH, lactate dehydrogenase)
즉, 젖산은 ‘버려지는’ 노폐물이 아니라 NAD⁺를 재생하여 해당과정을 지속시키는 생존 메커니즘이다. 이 과정을 통해 근육은 단 몇 초 안에 더 많은 ATP를 만들 수 있다.
3. 젖산 = 피로의 원인? 오해와 진실
젖산은 흔히 "근육통의 원인", "피로물질"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오래된 오해다. 현대 생리학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 젖산은 산이 아니다
젖산(Lactate)은 염기 성질이며 pH를 떨어뜨리는 것은 해당과정 중 방출되는 수소 이온(H⁺)이다. - 젖산은 에너지원이다
간에서 코리 회로(Cori cycle)를 통해 포도당으로 다시 전환되거나 심장·뇌·간에서 직접 에너지로 사용된다. - 근육통의 원인은 미세 손상
고강도 운동 후 발생하는 지연성 근육통(DOMS)은 젖산 때문이 아니라 근섬유의 미세 파열과 염증 반응 때문이다.
즉, 젖산은 오히려 응급상황에서 에너지를 이어가기 위한 생리적 적응물질인 셈이다.
4. 무산소 대사의 대가: 에너지의 효율성과 한계
젖산 경로는 산소 없이도 에너지를 공급하는 장점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
- ATP 생산량이 적다
- 포도당 1분자당 2 ATP
- (산화적 대사는 약 36 ATP 생성)
- 수소 이온 축적으로 산성화
- 근육 내 pH 저하 → 효소 작용 방해
- 수축 단백질 기능 저하 → 피로 유발
- 젖산 축적은 회복이 필요하다
- 회복기 동안 젖산은 간, 심장, 근육에서 분해된다
- 이를 위한 산소 소비량이 늘어나 ‘운동 후 산소 섭취 증가(EPOC)’가 발생한다
5. 고강도 훈련과 젖산 적응: 젖산역치의 개념
운동 생리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젖산역치(Lactate Threshold)다. 이는 운동 중 혈중 젖산 농도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 낮은 역치: 쉽게 피로해지고 지구력이 낮다
- 높은 역치: 더 높은 강도의 운동을 젖산 축적 없이 수행 가능
지속적인 고강도 훈련(간헐적 인터벌, HIIT 등)을 통해 근육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젖산에 적응한다:
- 젖산 제거 효율 증가 (LDH 효소 증가)
- 미토콘드리아 수 증가 → 산화적 대사 향상
- 근육 내 완충 능력 강화 → pH 변화 억제
이처럼 훈련은 근육의 대사 경로를 변화시키며, 젖산의 생성과 활용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6. 코리 회로와 젖산 재활용 시스템
젖산이 단순히 근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간으로 이동해 다시 포도당으로 전환되는 경로를 코리 회로(Cori cycle)라고 한다.
젖산 → 간 → 피루브산 → 포도당 → 혈중 방출 → 근육 사용
이 시스템은 짧은 시간 고강도 활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 단, 이 경로는 ATP 소비가 많아 에너지 낭비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생존을 위한 신속 대응 메커니즘으로서 진화적으로 매우 중요한 경로이다.
7. 젖산을 보는 새로운 시각
이제 우리는 젖산을 단순한 ‘피로물질’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젖산은 무산소 조건에서 에너지를 잇는 필수 대사산물
- 젖산은 심장·간·뇌에서 재활용 가능한 연료
- 젖산 생성은 근육 피로를 의미하지 않으며 훈련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
젖산은 몸이 위기에 처했을 때, 산소 공급 없이도 근육을 움직이기 위해 선택한 생리적 대응의 결과물이다. 이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생존 전략이며 체력 향상과 운동 능력 개선을 위한 훈련 지표로도 활용된다.
젖산은 고강도 무산소 운동 시에 반드시 생성되는 부산물이지만, 피로와 통증의 주범이 아니다. 오히려 젖산은 근육이 산소 부족 상황에서도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대사적 지혜이자 응급 에너지 전달자 역할을 한다.
근육은 ‘짧고 강한 힘’을 내기 위해 효율보다 속도를 선택했고, 그 대가로 젖산이라는 경유지를 거치게 되었다. 이 선택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숨겨진 생존 전략’이 되었다.
오늘 당신이 운동으로 땀을 흘릴 때 그 불타는 느낌 뒤에 숨어 있는 젖산의 진실을 떠올려보라. 그 작은 분자 하나가 당신의 생존과 운동 능력을 얼마나 정교하게 지탱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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