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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미각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냄새와 맛이 뇌에서 ‘풍미’로 통합되는 생리학적 메커니즘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 단지 혀로만 맛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경험의 대부분은 후각에 의해 완성된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려 코가 막혔을 때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후각과 미각이 함께 작동하여 ‘풍미(flavor)’라는 감각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후각과 미각을 잃은 환자들의 보고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후각수용체와 미각세포가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감각 기능은 단지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염과 방어의 최전선에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이 글에서는 후각과 미각이 어떻게 작동하고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생리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동시에 냄새와 맛의 구분 과정, 감정과 기억과의 연결, 그리고 감각 기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사례와 해석을 통해 풀어본다.

 

1. 후각의 구조와 작동 원리

1) 후각상피와 후각세포

후각은 비강의 상부에 위치한 작은 점막층, 후각상피(olfactory epithelium)에서 시작된다. 이 면적은 작지만 약 500만 개의 후각세포가 밀집되어 있다. 이 세포들은 평균 60일을 주기로 새롭게 교체되며 신경세포 중 드물게 지속적인 재생 능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이 작은 점막은 마치 공항의 보안 게이트처럼 공기 중의 수많은 분자들 중 특정 화학 물질만을 선택적으로 감지한다.

2) 냄새 자극의 감지 과정

휘발성 화학 물질이 코로 들어오면, 점액층에 녹아 후각세포의 수용체 단백질과 결합한다. 이 결합은 곧바로 전기 신호로 변환되며 후각신경을 따라 대뇌 후각 피질로 전달된다.

다른 감각들이 대부분 시상(thalamus)을 거쳐 대뇌로 전달되는 것과 달리 후각은 시상을 우회하여 뇌의 깊은 구조(변연계)로 바로 연결된다. 이 점이 후각의 독특함이자 강점이다.

후각은 단지 향을 감지하는 감각이 아니다. 어떤 냄새는 기억과 연결되고 또 다른 냄새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자극한다.

예컨대, 어린 시절 외할머니 집에서 맡았던 된장국 냄새는 지금도 나에게 ‘집’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후각이 해마와 편도체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3) 후각 순응

후각은 매우 민감하지만, 자극에 빠르게 적응하는 특성이 있다. 처음에는 진하게 느껴졌던 향수가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감지되지 않게 되는 현상은 후각 순응(olfactory adaptation)이라고 부른다.

이 순응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뇌가 ‘중요하지 않은 자극’을 걸러내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후각은 필요할 때 민감하게 작동하지만, 일상적인 자극에는 점점 무뎌지는 선택적 감각이다.

 

2. 미각의 구조와 기능

1) 맛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음식을 ‘맛본다’고 느끼는 자극은 대부분 혀 위의 미뢰(taste buds)에서 시작된다. 각 미뢰는 평균 100개의 미각세포로 구성되며 타액 속에 녹아 있는 맛 물질이 미각세포의 융모에 닿으면 전기적 신호가 생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혀 전체가 모든 맛을 감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부위가 특정 맛에 좀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맛 종류주요 자극 부위특징
단맛 혀끝 에너지원 인식
짠맛 혀 양옆 전해질 균형
신맛 혀 옆 중앙 부패 탐지
쓴맛 혀 뒷부분 독성 회피
감칠맛 (우마미) 전반 단백질 정보 감지
 

현대 미각 연구는 이 다섯 가지 맛 외에도 지방, 탄산, 금속, 물 등의 감각도 미각의 일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 미각 자극의 전달

미각세포가 받은 자극은 설신경(7번), 설인신경(9번), 미주신경(10번) 등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시상을 거쳐 대뇌 미각피질에서 최종적으로 ‘맛’으로 인식된다.

단순히 신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뇌는 이 맛 정보에 과거 경험, 후각 자극, 음식의 온도와 질감까지 통합하여 음식의 전체 풍미를 구성한다. 미각은 생각보다 훨씬 ‘종합적’인 감각이다.

 

3. 후각과 미각은 어떻게 협력하는가?

코감기에 걸렸을 때 음식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풍미의 80% 이상이 후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음식에서 발생한 향은 입 안에서 비강으로 역류되는 공기를 통해 인식된다. 이 과정을 역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라고 한다.

맛만 있는 음식은 밋밋하고, 향만 있는 음식은 공허하다. 두 감각이 통합되어야 우리는 ‘진짜 맛’을 느낀다. 실제로 미각이 정상이더라도 후각이 차단되면 단맛, 짠맛 정도만 인식 가능하고, 고기와 생선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4. 감각 기능은 나이와 온도에 따라 변화한다

1) 나이의 영향

나이가 들면 후각세포와 미각세포의 수가 감소한다. 특히 단맛과 짠맛에 대한 민감도가 현저히 낮아지며, 고령자일수록 강한 자극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고혈압, 당뇨 등 식습관 관련 질환과도 연결된다.

감각의 둔화는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영양 상태와 삶의 질을 동시에 결정짓는 중요한 생리 변화다.

2) 온도의 영향

맛은 온도에 따라 강도와 인식이 달라진다.

맛 종류온도 변화에 따른 민감도
단맛 따뜻할수록 더 잘 느껴짐
짠맛 차가울수록 더 강하게 인식됨
 

예를 들어, 아이스커피에는 설탕을 더 넣어야 단맛이 느껴지고, 식은 국은 평소보다 더 짜게 느껴진다. 감각은 고정된 수용기가 아닌, 환경과 조건에 따라 조절되는 유동적 시스템이다.

 

후각과 미각은 서로 독립적인 감각기관이지만 실제로는 음식의 ‘맛’을 함께 만들어내는 긴밀한 파트너다. 후각은 단순히 향을 맡는 감각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기억을 되살리며 미각은 영양소를 구별하고 생존을 돕는다.

특히 이 두 감각은 신경학적으로도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나이, 건강, 환경에 따라 쉽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고 냄새를 맡으며 살지만 그 경험이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의 결과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는 드물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단순한 행위도 감각과 뇌가 유기적으로 협력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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