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나는 그렇게 낭비하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물건도 충동구매보다 필요한 것만 사려고 노력했고, 배달 음식도 자주 시켜 먹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주변을 둘러보니, 쓰레기통은 늘 가득했고, 한 번 쓰고 버린 플라스틱 용기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특별히 낭비한 기억은 없는데, 현실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문제는 나의 습관이었고, 그 습관이 낭비의 정체였다는 걸.
어떤 계기로 제로웨이스트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전의 소비 습관을 어떻게 반성하게 됐는지 이 글에서 공유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작고 소소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삶의 방향을 바꿔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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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된 진짜 계기
1.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마주한 장면
하루는 밤늦게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는데, 그날따라 쓰레기가 유난히 많았다. 박스에서 쏟아진 플라스틱 용기들과 음식물 찌꺼기 냄새, 비닐에 비닐을 감싼 포장지들. 그 한 장면이 나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중에 절반 이상은 내가 며칠 안에 만든 쓰레기일 텐데…’ 문득, 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 소비 방식을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소비들이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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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NS 속 ‘제로웨이스트 실천자들’의 자극
그 후 자연스럽게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SNS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보게 됐다. 텀블러 하나로 커피숍을 다니고, 고체 샴푸를 쓰고, 리필숍에서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 사람들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단순하고 차분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되게 멋있어 보였다.
‘저런 삶,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바로 그 주말부터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텀블러를 챙겼고, 장바구니를 들었고, 가능한 한 포장을 줄인 제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용기를 내 '용기 내 챌린지'도 도전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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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반성하게 된 소비 습관 TOP 5
① “편한 게 최고지”라는 마인드
나는 불편함을 싫어했다. 그렇기에 항상 배달을 시키고, 커피도 일회용 컵에 받아 들고 다녔다. 그런데 그 ‘편함’이 결국 지구에게 불편함을 전가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② “재활용하면 괜찮지”라는 착각
플라스틱을 사용하고 나서 분리수거만 잘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재활용되는 비율은 20%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재활용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던 셈이다.
③ “싸고 빠르게”만 생각했던 구매 방식
온라인 쇼핑에서 배송비를 아끼려고 불필요한 물건을 함께 사곤 했다. 싸게 샀다고 뿌듯했지만, 결국에는 쓰지도 않는 물건 + 과대포장 쓰레기만 늘었다. 가성비보다 중요한 건 필요한 만큼만 사는 소비 태도였다.
④ “이번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자기 합리화
텀블러를 깜빡하고 나간 날은 “오늘만 그냥 종이컵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 ‘오늘만’이 일주일에 세 번은 됐다. 나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너무 쉽게 저버리고 있었다.
⑤ “환경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환경 보호는 언젠가 여유 생기면 하겠다는 핑계를 자주 댔다. 하지만 지금을 바꾸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환경은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내가 내는 쓰레기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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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바꾸면 삶이 바뀐다: 변화의 시작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느낀 건 단순히 쓰레기 양이 줄었다는 게 아니다. 내 삶의 ‘속도’가 바뀌었다.
빨리 사서 빨리 쓰고 빨리 버리던 습관에서, 천천히 고르고 오래 쓰며 고민하게 됐다.
물건을 대할 때 ‘이건 얼마나 쓰고 얼마나 버려질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는 감각이 생겼다.
쓰레기통을 보는 횟수는 줄었고, 고민하면서 산 물건은 더 오래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게 됐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 변화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줬다. 옷, 음식, 화장품, 여행, 만남… 모두 ‘덜 소비하고 더 의미 있게’라는 기준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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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꾼 건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작은 계기였다
누군가는 제로웨이스트를 ‘힘든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바꾼 건 어떤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그냥 아주 평범한 ‘한 장면’이었다.
그날 분리수거장에서 본 쓰레기 더미, SNS에서 본 고체 치약 사진 한 장, 커피숍 직원에게 텀블러를 내밀며 받았던 미소 하나.
그 작은 계기들이 모여서 내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누구나 바뀔 수 있다. 다만, 그 ‘작은 계기’를 알아차릴 수 있는 눈과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